6부 조회수를 보니 한 450분이 글을 보셨더군요,,
남자분들은 거의 공감을 안하실거 같기도 하고,
한다고 해도,,
피부에 와닿지는 않을거 같아요
제가 봐도 "그냥 모,,,그럴수도 있겠다."
정도지,,"와, 신기하다. 나랑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구나"
정도의 반응은 남자로써는 기대하기 힘든거 같습니다.
일단 타겟은 31-35정도의 여성분 이니,ㅋ 남자분들은 이해를,ㅋㅋㅋ
근데 그 분들이 더욱 어려워요,ㅋ
사회생활도 하고, 남자에게 받은 상처도 한두개씩 있고
첫 전투를 나가는 신병이 아닌,
두세번정도 죽을고비를 넘긴 선임병이 된 여자분들은
더욱 어렵다고 해야될까?
매일 무엇을 쓸까 고민을 합니다.
특별히 주문이 없어 오늘은 프리~~~하게 프리버젼,ㅋ
그리고 사실은 저의 싱크 탱크 총알이 한 80%쯤 쓴거 같은 기분이 듭니다.
글안올라오면, 혼자 자료찾으러 배회하러 간줄 아시길,ㅋㅋ
다음주부터 기사시험, 토익, 기능사 시험, 줄줄이 비엔나로 기다리고 있기도 하고,ㅋㅋ
그럼 또 한판 붙어보겠습니다.,,ㅋ
==========================================================================
회사에서 점심을 먹고,
가만히 놓여진 다이어리를 보니 펼쳐보고 싶어진다.
커피를 진하게 한잔 타서 과장님께 갔다 드리고,
연막을 하나 쳤으니 한 30분간 농땡이를 피워도 되겠다.
몰래 처녓적 다이어리를 뒤적인다. 아참 나 처녀지,ㅋㅋ
난 중학교때 좀 심할정도로 내성적이었다.
소풍에 선생님이 탄산음료를 가져오지 말라는 말에
엄마가 꾸역꾸역 싸준 콜라1.5리터를 가방에 넣어두고 하루종일 두었다가
집에 와서 풀어보니 콜라가 썩어(?) 있었다.ㅋ
한번은 명절날 자가용을 타고 시골가다가 화장실이 없어
부모님이 차에서 내려 그냥 주변에 소변 누라고 하셨는데
꾹꾹참고 있다가 휴게소에 가서 눌정도로
정말 트리플 에이형에 버금가는 트리플 내성적인
그리고,
중학교때 난 반에서 4등(8개 반중)정도, 전교에서는 24등정도를 했었는데
부모님은 내가 중학교 2학년이 될때까지 내 성적에 관심이 없으셨다.
성적이 반에서 24등인 줄 아셨단다. 난 항상 특별한 말은 안했고, 그냥 성적표만 보여드렸는데
공부못하는 자식보다 성적표 안보는 부모님이 더무섭다.ㅋ
---------------------------------------------------------------------------------------------------------
혼자 중학교때 생각을 하고 있는데
문득, 떠오른 사람이 있었다.
잊을수 없는 사람,
교생실습을 나온 나만의 한문선생님이 있었다.
지금이야 알지 그때는 정말 하늘에서 내려온 왕자님 정도로 생각할 정도로
멋졌다.
중국의 장국영 바로 그였다.
아비정전과 패왕별희, 천녀유혼, 그이후의 해피투게더 등
우리나라 여심을 강타한 장국영과 호형호제 할 사이?
장국영 브로마이드, 장국영 사진을 도배한 필통,
장국영 티셔츠, 장국영등등, 장국영,,,사진만 한 200여장 이상 가지고 있을정도로 난 장국영을 좋아했는데
우리 선생님이 될줄이야,,
수업을 시작하는 첫날
"여러분 반갑습니다. 저는 속초여중에 교생실습나온 장국영이라고 합니다."
난 사실 공부는 곧잘 했지만 공부에 취미가 있는거는 아니었다.
워낙 친구들과 안어울리고, 내성적이다보니 수업시간에 공부하고
쉬는시간에도 책을보았다. 심지어 집에서도 책을 보는 취미가 독서였다.
어차피 주로 읽는 책도 여성잡지, 아니면 소년챔프, 순정만화 등 학교에서 배우는
경제관련, 사회관련 학습관련 서적은 안보는 타입이었는데
그날부터 난 한문 매니아가 되기로 결심했다.
매주1회 한문 시험을 봤는데
난 유일하게 한문공부를 하루에 3시간이상 하는 사람이었고, 항상 20문제 모두 맞추었다.
반에서 1등인 최양이 나에게 집에서 한문공부만 하냐고
놀리기도 할정도로,,,
또 평소에는
아침에 일어나면 천장에 선생님이 계시는 듯 했고,
점심에 밥을 먹을때도 선생님이 무슨 반찬을 드실까 생각했다.
밤에 이불을 펼때도, 지금쯤 선생님도 주무시겠지 하며
잘주무시라고, 혼자 읍조리곤 했다.
한문사랑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모든 명심보감, 천자문, 사자소학 등등
한문선생님께 다가가고 싶었다.
그리고 아침에 일찍와서 앞자리를 맡았다.
앞자리는 교탁바로 밑인데
선생님께 출석부 체크용 볼펜을 드리는 자리
수학선생님은 그냥 모나미 300원급
영어선생님은 약간 젤로팬스타일 1500원급
우리 최강 한문선생님은 하이테크 2200원급(광개토 대왕급) 전용펜을 드리곤 했다.
한번은
" 우리 영숙이는 한문 좋아하나봐"
"네"=> 한문선생님 되서 장선생님한테 시집갈껀데
"그래 모든지 열심히 하면 좋은거야"
"선생님 학교 다니기 힘드시죠?"=> 여자애들이 좀 드세서 힘드시죠?
"아니야, 할만하단다. 재밌기도 하고"
내가 느끼는 선생님은 항상 열심히 하시고,
긍정적이셨지만,
첫 교생실습이다보니 약간 힘에 붙이기도하고
가끔은 담임선생님께 꾸중을 듣기도 하셨다.
난 그때마다 담임선생님을 복수(?)할 꺼리를 찾곤했는데
항상 교생선생님 책상 위에는 장미와 안개꽃을 놓아두었고,
담임선생님 책상에는 닦다가 안치운 걸레를 올리곤 했다.ㅋㅋ
지금생각에 선생님도 내가 좋아하는지 아셨나보다
그 이후 여러 사건이 있었다.
중간고사 몇 문제가 잘못되었다고, 반전체 학생들이 선생님께 불손하게 대들었고,
울먹하시며 힘들어하신 선생님 모습
난 속으로 너무 슬펐다. 내성적인 성격으로 도와드리지도 못하고
아침에는 항상 좋은 향수를 뿌리고 출근하시는데 난 그 모습을 보려고 교무실 한켠에서 기다렸는데
그 모습을 담임선생님께 들켜서 꾸지람도 듣고,
방과후 교실뒷편의 게시판을 준비하고, 고생이 많다며 사주신 떡볶이와 순대를 사주셨던 기억도 있고,
짧은 교생실습 기간이었지만, 나에게는 첫사랑으로 기억된다.
실습을 마치고, 교정을 나가는 선생님의 뒷모습이
지금도 아련하게 기억이 난다.
그 이후 태백의 한 여고에서 한문선생님으로 재직하신다는 얘기를 들었다.
첫사랑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 끝이 늙어서 쭈글쭈글 할아범이 되어 누군가의
남자가 되어 있어도, 그 아련한 추억만은 가슴에 남는다.
추억속에 갇혀 사는 것은 불행이다.하지만 음미할 추억하나 없는 것도 더 불행이다.
나에겐 정말 특별한 첫사랑이 있어 행복하다.
우리 선생님은 나의 추억을 만들어주신 주인공이고,
그리운 그를 한켠에 잘 꽂아두었다. 타우렌, 멸치, 술먹고 뻣은 건과 함께 ㅋㅋ
또 일상으로 돌아온다.
이번달 출장비와 개인별로 지출된 직급 보조비를 정리해서
타우렌에게 넘겨야 겠다.
끝
명언 : 얻는것은 무엇인가 고생을 하고서,,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스크랩] 30대 초반 여성분들의 근래 공구가 급증하는 이유에 대한 고찰 (9부 완결) (0) | 2010.09.19 |
|---|---|
| [스크랩] 30대 초반 여성분들의 근래 공구가 급증하는 이유에 대한 고찰 (8부) (0) | 2010.09.19 |
| [스크랩] 30대 초반 여성분들의 근래 공구가 급증하는 이유에 대한 고찰 (6부) (0) | 2010.09.19 |
| [스크랩] 30대 초반 여성분들의 근래 공구가 급증하는 이유에 대한 고찰 (5부) (0) | 2010.09.19 |
| [스크랩] 30대 초반 여성분들의 근래 공구가 급증하는 이유에 대한 고찰 (4부) (0) | 2010.09.19 |